스마트팜으로 재배한 채소는 넘치는데 왜 안 팔릴까?지역 맞춤형 틈새 작물 전략
단순한 재배가 아니라, 스마트팜 시장 진입 구조가 문제다
최근 몇 년 사이 스마트팜을 중심으로 신선 채소 시장에 진입한 창업자들이 급증했다. 상추, 청경채, 루꼴라, 케일과 같은 잎채소류를 중심으로 한 수경재배와 소규모 유통 기반의 모델은 낮은 창업 진입장벽과 상대적으로 빠른 수확 주기로 인해 많은 창업자의 선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창업 이후 이들이 마주하는 가장 현실적인 벽은 ‘생산은 되지만 팔 곳이 없다’는 점이다. 유통 경로는 제한적이고, 소비처는 이미 안정적으로 기존 거래처를 갖춘 농가와 연결되어 있어 신규 진입자는 “공급이 많지만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라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소 시장은 끝났다”는 인식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자체가 종료된 것이 아니라 ‘재배 품목의 포화’와 ‘지역 특성과 맞지 않는 작물 선택’이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전국적으로 많이 생산되고 있는 품목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소비 특성, 유통 경로, 계절 수요 등을 고려한 틈새 작물을 선점하는 전략이야말로 신선 채소 시장에서 생존하는 핵심 방법이다.
이 글에서는 스마트팜 운영자가 각 지역의 수요 구조와 소비 행태를 기반으로, 포화된 채소 시장 속에서도 틈새 진입이 가능한 전략 품목과 구조 설계법을 제안한다.
스마트팜으로 상추·청경채만 재배한다면 이미 출발선이 늦었다
초기 스마트팜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품목은 상추, 청경채, 루꼴라 등이다. 이들 작물은 수확 주기가 짧고, 재배 기술도 비교적 단순하며, 수경재배 시스템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성’이 오히려 경쟁 포화 상태를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수도권 인근 지역에서는 이미 다수의 청년 스마트팜 창업자가 잎채소류 위주로 공급을 시작했기 때문에 로컬마트, 식자재 유통업체, 밀키트 가공업체 등 주요 거래처는 특정 작물에 대해 이미 포화 상태이거나 단가 경쟁이 과열된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동일 품종을 생산하게 되면 단가는 하락하고, 거래처 확보에 실패하며, 재고 회전이 느려지는 구조가 반복된다.
따라서 똑같은 스마트팜 구조라도 ‘무엇을 기르느냐’에 따라 유통 성패가 극명하게 나뉘는 시대다. 이미 상추와 청경채로는 수요를 선점한 농가와 경쟁이 어렵기 때문에, 이제는 지역 수요 기반의 ‘틈새 작물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전환을 위해선 작물 수익률뿐만 아니라, 해당 작물의 구매 주기, 구매처, 계절별 수요 패턴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스마트팜 농작물은 지역별 소비 패턴을 이해하면 틈새가 보인다
틈새 작물 전략의 핵심은 ‘전체 시장’이 아니라 ‘지역 단위 소비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도권은 밀키트, 샐러드 전문점, 로컬 유통 기반의 B2B 수요가 높지만, 강원권이나 충청권은 농촌 체험 연계형 직거래나 학교 급식 수요가 주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차이는 재배 작물 선택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도권의 경우, 샐러드 믹스용 레드코랄, 프릴상추, 미즈나(물 갓), 바타비아 등의 품목이 더 주목받을 수 있고, 수도권에 본사를 둔 도시형 유통업체와의 연계로 단가를 방어할 수 있다.
반면 전북·경북 등지에서는 지역 내 채식 수요나 대체식품 수요가 낮기 때문에, 기능성 작물(예: 적겨자, 아욱, 치커리 등)을 중심으로 한 건강식품 납품 또는 지역 요양원, 특수학교 급식 납품 같은 틈새 유통 전략이 더 적합할 수 있다.
또한 제주나 도서 지역에서는 물류 제약으로 인해 생채소 수급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선재배 후 냉장 포장 납품이 가능한 극소형 작물(예: 마이크로그린, 어린잎채소 등)을 중심으로 한 고단가 수요가 존재한다.
즉, 같은 작물이라도 지역에 따라 유통 방향과 적정 가격, 수요층이 달라지기 때문에, ‘내가 있는 지역은 어떤 소비 경로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작물 선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스마트팜의 틈새 작물은 수익성보다 ‘유통 안정성’이 먼저다
틈새 작물 전략을 설계할 때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희소성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면 단가가 높아 수익이 늘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단가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출하 루틴의 반복 가능성’, 즉 유통 안정성이다.
예를 들어, 수익률이 높다고 알려진 바질, 루꼴라, 수경 미나리, 적갓 등은 유통처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신선도 문제와 보관 한계로 인해 재고가 폐기되는 비율이 높다. 아무리 단가가 높아도 한 주라도 거래처가 끊기면 수익이 증발하게 되는 구조다.
따라서 틈새 작물 전략은 ‘잘 팔릴 것 같은 작물’이 아니라 ‘꾸준히 반복 납품이 가능한 유통처가 먼저 확보된 작물’로부터 역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역 급식 납품, 영세 가공업체, 로컬 밀키트 브랜드, 협동조합 중심의 정기 유통망 확보가 틈새 작물 진입에서 훨씬 중요한 전략이 된다.
스마트팜은 생산성만으로는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 유통이 구조화된 작물만이 반복적인 매출 구조를 만들 수 있으며, 이는 창업 이후 6개월~1년 안에 생존율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된다.
스마트팜 채소 시장은 포화가 아니라 ‘선택 실패’의 결과일 수 있다
스마트팜 창업 이후 “생산은 되는데 팔 곳이 없다”는 말은 종종 시장의 문제로 치부된다. 하지만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그 문제는 대체로 시장 전체의 포화가 아니라 ‘상품 선택의 실패’와 ‘유통 구조 부재’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포화된 채소 시장에서도 살아남은 스마트팜은
① 수익성보다 유통 안정성을 우선 고려했고
② 지역 수요를 파악한 뒤 역방향으로 작물을 설계했으며
③ 품목 수를 줄이고 반복 납품 가능한 구조를 먼저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 스마트팜의 작물 선정은 기술적 적합성보다 지역 기반 수요와 유통 구조까지 함께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내 지역에 지금 없는 채소가 무엇인가?”라는 구체적인 시장 탐색이 자리 잡아야 한다.
채소는 넘치지만, ‘팔리는 채소’는 늘 부족하다. 살아남는 스마트팜은 재배 능력이 아니라 시장 구조를 먼저 읽는 능력으로 승부한다.